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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언론스크랩-엄마에게 흉기 든 은석이 따뜻한 한마디만 들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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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1-14 02:10 조회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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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흉기 든 은석이, 따뜻한 한마디만 들었어도..


[동아일보]

2000년 5월. 세상은 이은석이란 한 남자대학생이 벌인 끔찍한 사건으로 술렁였다. 부모를 차례로 망치로 때려 살해한 뒤 토막 내 이틀간 곳곳에 내다버린 것이었다. 그간 토막살인 사건이 여러 건 있었어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세간의 관심은 더 컸고, 반인륜적 범행에 쏟아진 비난은 극렬했다. 게다가 `등록금 주지 않은 데 분격해 저지른 패륜적 범행`이란 성급한 초기 언론보도가 공분을 부채질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 역시 며칠 지나지 않아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자나 수사경찰, 재판정의 법조인은 그럴 수가 없었다. 패륜적 범행 뒤에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해체 직전의 일그러진 가족관계, 부모에 의해 오래도록 자행된 심각한 아동 학대가 사건 주변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엔 늘 `나쁜 말`이 난무했다. `넌 쓰레기 같은 놈이야` `사내놈이 그래 가지고선` `넌 나가 죽는 게 낫겠다…`. 온순하고 내성적인 아들을 존속살인으로 내몬 건 멸시와 모욕의 `말`이었다.

이걸 직감한 이가 있었다. 심리학자 이훈구 교수(연세대)다. 당시 심경을 묻는 언론에 그의 형이 한 말이 계기가 됐다. 형의 말은 의외였다. 동생을 강하게 비난하거나 슬퍼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동생을 이해한다`고 했다. 바로 그 말에서 이 교수는 `아동학대`를 감지했다. 그는 이은석의 심리분석에 착수했다. 어릴 적 일기를 읽고 형과 친구 등 주변인물을 만났다. 수감된 이은석도 세 차례나 면담했다.

결론은 예상대로였다. 이은석은 아동학대의 희생양으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다. 그는 은석이가 부모로부터 어떤 학대를 당했고, 그럴 때 어떻게 느꼈으며, 그게 성장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범행으로 이어지게 됐는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은석이의 심리변화 과정을 소상히 기록해 책으로도 냈다. 책 이름은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 특별한 제목은 이은석이 경찰에서 한 진술에서 따왔다. 그는 범행 열흘 전 엄마에게 난생처음으로 반항했다고 한다. 그때 자신에 대한 학대를 따져 물으며 네 시간이나 언쟁을 벌였다. 은석이는 그때 엄마가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잊었을 거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기자는 이 시리즈 취재를 시작하며 참으로 많은 걸 느끼고 또 반성하고 있다. 그건 20대 중반의 연년생 두 형제를 둔 50대 중반의 아버지로서 나 역시 대화와 이해부족으로 자녀 간 부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걸 느끼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은 못난 가장임을 인정해서다.

이은석의 성장과정과 가족관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깨쳐야 할 잘못된 인식과 행동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자녀가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비뚤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엄마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면 최악이다. 은석이의 어머니는 명문여대, 아버지는 해군장교 출신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평소 각방을 쓸 만큼 소원했고 대화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에겐 두 아들의 성공이 자신의 인생목표였다. 그런데 방법이 옳지 못했다. 강압적이고 신경질적인 행동과 언사(학대)로 은석을 내몰았다.

형은 괄괄한 성격이라 반항했고 대학에 진학하자 아예 집을 나갔다. 소극적이고 예민한 은석이가 어릴 적부터 순종을 택한 것과 정반대였다. 그런데도 은석은 엄마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학대만 당했다. 엄마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 건 당연했다. 감정표현이 서툰 은석은 내성적 성격이 됐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타인과의 관계 역시 서툴렀다. 이 때문에 학교에선 왕따를, 군대에선 후임병한테까지 업신여김을 당했다.

그런데도 부모의 관심은 형에게만 쏠렸다. 입대한 형은 면회를 해도 은석은 단 한 차례도 면회하지 않았다. 은석의 혼란은 가중됐다. 늘 반항하는 형에겐 관심을 보이면서 순종만 해온 자신은 홀대하고 학대하다니…. 사건은 가출한 형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준 것이 도화선이었다. 은석은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항했다. 분함과 섭섭함을 토로했다. 일기까지 꺼내 학대사례를 일일이 들이댔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억에도 없는 일이다" "왜 그때 말하지 않고 이제야 그러느냐"고.  

그게 사건 열흘 전. 그 다툼 사흘 후엔 아버지까지 거들었다. `한심한 놈`이라는 등의 멸시와 모욕이 쏟아졌다. 이후 은석은 6일간 방에 틀어박혔다. 부모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은석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건 바로 이때. 더이상 부모와 잘 지내기가 힘들다고 결론내린 것인데 그게 살해 결심이었다. 그는 어머니 살해 후 네 시간 뒤 아버지까지 살해했다. 애초 대상은 어머니뿐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제정신이 돌아오자 아버지로부터 닥칠 화가 두려웠단다. 그래서 결국은 아버지마저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원인은 부모의 `거부적 양육태도`로 귀결된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B 헐록은 `청소년발달에서의 가족관계 변화`라는 책에서 부모의 `무시` 등 거부적 양육태도가 자녀를 반항적이고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거부적 양육태도에서도 특히 언어학대가 청소년의 자아존중감을 약화시킨다고 한다.

그걸 입증하는 조사가 2005년 한국에서 있었다. 중고교생 431명(평균연령 14.66세)이 대상이었는데 언어학대를 받을수록 사회적 위축감이 높았고 자아존중감은 저하됐다. 경멸적 거부적 언어학대가 사회적 고립감을 심화시키며 원망적 언어학대가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린다.

언어학대가 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를 새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어학대를 줄이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지 못해서다. 언어학대 속에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가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회적 고립감과 낮은 자존감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은 눈 앞의 불을 보듯 뻔하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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