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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교육과학기술부-연대 자원봉사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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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2-27 01:26 조회13,5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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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의 희망, 노는 아이들의 선생님



















올해 초 이성호 교수님의 ‘교육과정 개발의 원리’라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수업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CBL(Community-based learning)이라는 걸 해야 합니다. CBL은 수업시간에 배운 교과지식과 지역사회 경험학습을 연계하여 지역사회 속에서 교과를 이해하고 실제로 활용해보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마천에 있는 ‘한빛 청소년 대안센터’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곳과 마천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갈 수 있었던 건 소명의식을 가지시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선생님들과 그 속에서 웃음을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빛 청소년 대안센터’를 19년 동안 이끌어 오신 최연수 소장님을 오랜만에 다시 뵙고 센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00년전. 아는 분께서 운영하시는 독서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경제적 사정으로 학원을 못 다니거나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왔습니다. 간혹 본드·가스를 흡입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지역의 특성상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현재 이 근처에는 아직도 청량리와 제기동이 개발되면서 강제이주 당하셨던 분들이 거여동 181번지에 5000세대의 판자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공부하러 나오지를 않아서 걱정이 되어 아이 집을 찾아가 보았어요. 그 동네에는 부모님들이 다 일하시러 멀리 가시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아지트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거기서 본드와 가스를 흡입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길거리 상담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지요. 그 이후로 다른 곳들로 몇 번 옮겨 다녔는데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를 타니까 주인들이 비워달라고 은근 압박을 주더라구요. 그래서 현재 센터로 이용되는 길거리 상담소 건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Q. 소장님에 대해 알려주세요.







98년도부터 청소년 관련 일을 시작했습니다. YMCA 일을 하면서 여러 제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부인중학교에 학교 부적응아 상담을 하러 다니면서 여러 제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야간거리 상담을 토요일마다 하면서 빵 아저씨 혹은 주먹밥아저씨라고 불렸습니다. 이렇게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노는 아이들을 접하다 보니 그들 사이에서는 노는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유명합니다.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삶의 고비마다 저에게 연락을 해서 고민을 나눕니다. 주례도 정말 자주 서요.(웃음)




 

 



Q. 아이들은 어떻게 센터를 알고 오나요?







원래는 야간거리상담으로 아이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안면마비가 오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야간거리상담을 하긴 하는데 몸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이들을 물고 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까지 모집의 형태로 아이들이 온 적은 없습니다.




 

 



Q. 실례지만 왜 안면마비가 오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때도 이맘때처럼 날씨가 추워졌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아이의 큰 교통사고가 있었고 너무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 아이는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아직도 병원에 있어요. 그런데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제가 제 몸을 살폈어야 됐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국 안면마비가 오고 말았죠. 지금도 조금만 몸이 힘들면 안면마비가 심해집니다.




 


 



 


 



Q. 어떻게 센터가 운영되고 있나요?







크게 두 가지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하나는 현재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한빛청소년대안센터이구요. 다른 하나는 위탁형 대안학교입니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는 쉽게 말해서 야학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검정고시 나아가 삶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위탁형 대안학교의 경우는 지금 다른 장소를 하나 구해 리모델링을 거의 다 마쳤는데요. 여기서 오픈식을 금요일날 가질 예정입니다. 공교육에 적응은 안 되고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는 어려운 친구들이 학적은 본 학교에 둔 채 여기 와서 수업을 들으면 졸업을 시켜주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아이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와서 교육을 받는 대안 교실도 열립니다. 또한 아이들이 놀토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꿈 넘어 꿈 코칭 센터’라는 생애설계 프로그램도 지원합니다.




 





 

 



Q. 진로 교육을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아이들이 당장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학을 목표로 하는 생애설계가 아니라 20년 후에 수많은 직업 속에 어떤 선택을 할지 도와주려 합니다. 현장에 나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물어보면 비교적 좋은 경제적 환경에 있는 아이들은 전문직을 꿈꾸고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축구선수와 같은 꿈을 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꿈을 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와 같은 미션을 통해 현장을 접해보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희 코치들은 그 생애설계에서 빈 부분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아이들이 집 설계도를 그린다고 했을 때 ‘기둥을 더 세워야 되지 않겠니’ 혹은 ‘이 부분은 다른 색깔을 칠하는 게 좋지 않겠니’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Q. 재정적인적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우선 국가와 기관에서 비용을 조금 받습니다. 그리고 단기적인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프로젝트 공모에 지원하여 사업비를 받아 진행합니다. 또 제가 청소년 쪽에서 일을 한지 좀 오래되어서 다행히 주위에서 저와 센터를 지켜봤던 분들이 조금씩 돈을 보내주시는데 이를 인건비로 씁니다. 그런데 다문화ㆍ노인ㆍ장애우와 같은 다른 복지 분야에 비해 지원이 적은 편입니다.




최근에 교과부에서 비인가 대안학교로 1500만원을 받아 잘 사용하였습니다. 시설지원비와 프로그램 진행 비용으로 잘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 ‘걸어서 바다까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거제 도보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아르바이트라는 사정으로 인해 많이 가지는 못했지만 간 아이들은 5일 동안 걸으면서 인생에 있어서 정말 기억에 남을 거 같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좀 더 정부가 학교 밖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공교육이 싫어서 유학을 가는 경우는 공교육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깨지고 공교육이 품지 못해서 아이들이 공교육을 벗어난 거라면 공교육이 책임을 어느 정도는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교육 시스템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간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교육 인프라가 작은 형태로라도 있어서 그들이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과의 소통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아이들이 비록 가정이 깨지고 학교에서 중퇴했어도 뭇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되지는 않았거든요. 나무가 접히는데 3년이 걸렸다면 다시 펴지는 데에는 3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고 하죠. 아이들이 마음의 경계를 풀 수 있도록 시간은 길게 잡는 편입니다. 주변에서 볼 때는 이 방법이 맞냐고 할 수도 있지만 확 잡아 비틀어버리는 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김밥을 주며 요즘은 어떠냐고 툭툭 치며 인사를 하고는 했었는데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아이들도 마음이 바뀌어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구요.




부모님들과의 소통은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가정의 문제로 부모님들께서 아예 관심을 안 가지시는 경우가 많아요. 가끔은 센터의 아이들이 그 분들 자식인지 우리 자식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답니다.






 







 



Q. 언제 가장 뿌듯하신가요?







바닥에 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보통사람 혹은 그 이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센터에 다녔던 한 여자아이는 센터를 다닌 이후에 대학교에 가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뒤 어린이 집 교사도 하고 아이도 낳아 잘 살고 있어요. 남자아이들은 소년원에도 가고 그랬던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치르고 요리사나 정비사 자격증을 따 자리잡고 잘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알바를 구해도 커피숍이나 술집 같은 곳에서밖에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센터를 온 이후로 아이들이 사무직이나 인포메이션 센터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아 좋아요.




 

 



Q. 제자들 이야기 좀 더해주세요.










거의 600명의 제자들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 아이들은 일류대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바닥에서 허우적거렸지만 지금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랑하는 제 제자들입니다. 그게 저에게 정말 커다란 행복이지요. 지금도 센터에서 어디 가면 운전하겠다고 오고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드시라고 음식들을 가져옵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아이가 있네요. 제가 부인 중학교에 생애 설계를 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아이는 결석을 67일이나 해서 3일만 더 하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멀리 살았었는데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후에 마천에 숨어들었죠. 그런 상황에서 생애 설계를 하게 되었고 그 아이는 고대 법대를 나와서 법률 자문 위원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아이들이 야유를 보냈죠.



하지만 저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오래 보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경희대 법대에 들어갔고 현재 고시공부 중입니다. 반면 생애 설계일 때 해결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교도소에 갔습니다. 현재 집안이나 자신의 상황이 좋고 나쁘고는 상관 없습니다. 미래를 길게 보고 플러스 방향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합니다.






 


 



Q. 학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가장 고마웠던 사람도 선생님이고 가장 증오스러웠던 사람도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이 정신을 못 차려서 자퇴를 하더라도 열성을 부었던 선생님이 있다면 극단적으로 삐뚤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 취급도 안 해주는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은 내면에 큰 상처를 입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요.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를 잘 발견해서 강화시켜주세요. 그리고 상과 벌이 있다면 상에 더 치우친 훈육으로 아이들의 행동수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공부라는 잣대 하나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경향이 큰 거 같습니다. 다양성이 중시되는 미래에서 직업은 수만 개이고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 뛰어난 아이들도 많은데 말이죠. 다수를 중심으로 하는 편의주의에 빠지지 마시고 벼랑 끝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버거우시다면 지역사회에 있는 저희 센터와 같은 곳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Q.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학을 꼭 갈 필요는 없어요. 자신의 인생 설계를 해보고 실현과정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야죠. 그런데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우왕좌왕 하다 대학에 가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학비의 부담을 안게 되기도 해요. 아르바이트로 구멍을 막으려고 하는데 학비가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학점은 떨어지죠. 그러다 보니 빚만 2천 만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30% 정도만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원하는 현장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공부를 하는 거죠. 경영인으로서 전문기술을 가지고 평생학교나 방통대에 들어가는 거죠. 개개인이 각 분야의 달인이 되어 당당하게 살면서 그러다가 원하면 언제든지 공부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Q. 소장님께서 꿈꾸는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단언컨대 시골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는 일보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을 하면서 훨씬 행복하고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만약 마천동에 있는 아이들과 살지 않았더라면 부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항상 저보다 잘 사는 사람만 쳐다보면서 항상 열등감을 가지며 한 푼도 제대로 못쓰며 살았겠지요. 저는 앞으로도 다양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돕는 파이프 라인의 역할을 하며 각자가 원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행복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속의 특권이라는 게 갈수록 공고화되는 걸 보면서 제가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청년시절부터 가져왔습니다. 과거에는 운동을 하면서 정치권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자기 영역에 자기 십자가를 지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만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통해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일요. 혜택을 받았으니 이 힘을 가지고 남을 밟고 일어서려는 게 아니라 약자를 짊어질 수 있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요.




사실 거제도를 다녀와서 몸이 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나이가 아니면 언제 거제도를 걸어볼까하는 생각에 끝까지 참고 걸었습니다. 한발 한발 걷다보니 어느새 끝까지 걸었더라구요. 저도 제 인생의 전체 길에 있어서 한발 한발 조금씩 걸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되어 큰 인기를 모았었기 때문에 아마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하답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윤수’를 기억하시나요. 제가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유년기시절에 이 주인공에게 손을 뻗어주는 사람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에 영화 똥파리의 일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도 그랬습니다. 주인공이 너무나 충격적인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만약 그 주인공을 잡아주는 존재가 있었어도 그 정도로 사람이 바뀌었을까 하구요. 소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더 좁은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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